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차 세계 대전 (문단 편집) === 사회적 === 남성들이 전선에서 싸우자, 그 자리를 자연스럽게 여성들이 대신하게 되었다. 프랑스 여성들은 전선에 나간 남성들을 대신해 공공서비스 및 상업에서 활약했다고 한다. 1915년 10월에는 탄약공장에서 일하는 여성이 7만 5천명에 달했다고 한다.[* 강민수 옮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플래닛미디어, 2008, 172~173페이지, Peter Simkins et al., The First World War: The War to End All Wars, Osprey Publishing,2003] 영국은 1915년 중반까지 자선, 복지에 여성 노동자들이 투입됐다고 한다.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가 탄약성을 설립한 후 1916년 7월에는 여성 노동자 수가 52만명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강민수 옮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플래닛미디어, 2008, 178페이지, Peter Simkins et al., The First World War: The War to End All Wars, Osprey Publishing, 2003] 1918년 7월 영국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여성은 731만명 이상이였다고 한다. 탄약 생산 공장에서 일하는 94만 7천명은 전체 탄약 생산 노동자의 90%에 달했다고 한다. 교통 11만 7천명과 농업 22만 8천명의 노동자도 여성이였다고 한다. 이들 중 다수는 1917년 창설된 여군(Women's land Army)의 일원이였다고 한다. 1917년 7월 창설된 여성보조부대[* Women's Army Auxiliary Corps이며, 이후 Queen Mary's Army Auxiliary Corps로 개칭]의 뒤를 이어 11월에 왕립해군여성부대 창설, 1918년에 왕립공군여성부대를 창설했다고 한다. 1918년 2월 국민투표법이 통과해 30세 이상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고 한다.[* 강민수 옮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플래닛미디어, 2008, 321페이지, Peter Simkins et al., The First World War: The War to End All Wars, Osprey Publishing, 2003] 프랑스와 영국 외에 미국 같은 다른 나라들도 1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초기 [[페미니즘]] 담론이 싹트고, 여성에게 제도적인 권리가 주어졌다. 군주정을 끝낸 전쟁이라고도 하는데, 이미 제1차 대전이 터지기 전에 유럽 바깥의 나라들의 군주정은 식민지배[* [[인도]], [[베트남]], 한국, [[미얀마]], [[인도네시아]], 중앙아시아의 군주정이 식민 지배로 무너졌다.]나 내부 소요[* [[신해혁명]]으로 제정이 폐지된 [[청나라]]나 내부의 불만으로 제정이 폐지된 [[브라질 제국]].]로 무너지고 있었고 그나마 건재하던 유럽의 군주정들도[* 하지만 유럽 군주정도 1870년 [[프랑스]] 제정 폐지와 1910년 [[포르투갈]] 왕정 폐지로 불안한 조짐이 있었다.] 이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등 4개의 제국이 망해 버리고 잠시 세워졌던 [[핀란드 왕국]]이나 독일 제국 내부의 수많은 제후국들의 왕정이 폐지되고 10여 개의 신생 공화국이 [[제국]]의 폐허 위에 세워지면서 '''20세기 왕정의 몰락의 신호탄을 울린 전쟁이기도 하다.''' 이후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이탈리아]],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알바니아]]의 왕정도 폐지되어 버림으로 유럽의 왕정은 서, 북유럽 지역의 일부 국가[*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리히텐슈타인]], [[룩셈부르크]], [[모나코]], [[안도라]], [[스페인]].]를 제외하곤 무너진다.[* [[스페인]]은 1930년대 왕정이 무너졌다가 [[스페인 내전]] 이후로 집권한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왕정을 부활시켰다. [[헝가리]]도 왕정이 무너졌다가 [[호르티 미클로시]]에 의해 복고되었으나 호르티도 초기의 프랑코처럼 왕 없는 왕국을 유지하다가 공산화로 폐지됐다. [[그리스]] 왕정도 1920년대에 무너졌다가 [[요안니스 메탁사스]]가 부활시켰지만 1973년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가 도로 폐지했다.] 말단 시민들만 병사로서 죽은 게 아니라, 양심적이고 지성을 갖추었던 젊은 세대의 20~30대 [[엘리트]](특히 프랑스)와 [[귀족]] 세력 역시 굉장히 큰 희생을 치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잘난 만큼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교육을 철저하게 받았기에 능력 여하를 불문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앞장서서 전장에 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다수가 살아 돌아오지 못했으며, 살아 돌아온 사람들도 상당수가 육체적이든 [[PTSD|정신적]]이든 멀쩡하게 돌아올 수가 없었다. 훗날 영국 총리가 되는 [[해럴드 맥밀런]]은 이 시기 입은 부상으로 평생 장애와 함께해야 했으며, 명문대인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나 [[옥스퍼드 대학교]]의 전사자 비율이 엄청나게 높았다고 한다. 대학교를 방문하면 칼리지마다 출신 사망자들의 이름을 돌에 새겨 기리고 있다. 당시 귀족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회계층의 참전자수 대비 전사자수 비율은 8:1이었는데 귀족층은 5:1이었다. 다섯 명 중 한 명은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http://kalnaf.egloos.com/3444321|참고]] 대부분의 젊은 엘리트와 귀족들이 공격의 선두에 서야 할 초급 [[장교]]로 복무했기에 이는 사실 필연적인 결과다. 이 시대를 봐도 후대인 2차대전을 봐도 선두에 서야 하는 초급 장교의 전사율은 일반 말단병보다도 훨씬 높다! 특히나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이 강했던 만큼 영국의 경우는 참전을 하지 않은 건장한 남성등, 특히 엘리트 가문들에게는 겁쟁이의 표식인 하얀 깃발을 주면서 조롱했다. [[러디어드 키플링]]의 아들 경우 시력의 문제로 신체검사에서 탈락을 했으나 아버지의 빽을 써서 장교로 참전했지만 결국 전사한다. 또한 이로 인해 '''진정한 귀족계층 역시 몰락했다.''' 프랑스 혁명으로 구체제가 몰락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혁명가들이 귀족들을 증오해서 혁명을 한 게 아니라 [[앙시앵 레짐]]의 폐지를 요구한 것이기 때문에 자코뱅당의 공포정치기를 제외하면 귀족들에게서 빼앗은 건 특권과 부당하게 모은 재산 뿐이었으므로 실제로는 그 이후에도 구체제의 잔재가 꽤나 많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남은 귀족 역시 전쟁이 터지면 앞서 나가는 모범을 보여서 나름대로 존중받기도 했다. 하지만 1차대전 중에 많은 귀족 가문의 '''젊은이들이 죽어나가는 바람에 대가 끊겨''' 진짜로 구 체제가 끝나버렸다. 반면에 사회의 지도층 또한 전쟁의 참화를 직접 경험하고 그 참혹함과 끔찍한 만행들을 뼈져리게 체감했기에, 지도층에게도 전쟁에 대한 거부감을 심을 수 있던 것은 다 타버린 집에서 그나마 건진 셈이다. 미국은 그렇게 인명피해가 타 연합군에 두드러지는 편은 아니지만, 대신 전후 참전군인의 처우 문제로 인해 [[보너스 군대]] 같은 말썽이 있었다.[* 여담으로 [[에뮤 전쟁]] 역시 1차대전 참전 후 미개척 토지를 개간한 참전용사들의 농토에서 [[에뮤]] 떼가 말썽을 부린 것에서 시작된 [[해수구제]] 작전이므로, 따지고 보면 위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도...] 이렇게 국민들을 총알받이로 희생시켰으니 국가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공산주의]] 계열에서는 국가의 지배세력들이 [[자본주의]]의 논리로 움직이므로 국가를 전복하고 공산 국가를 만들고 모두가 평등한 사회로 살자고 주장했고, 자유주의자들은 국민의 더 많은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극이 있으면 또 다른 극이 있듯 이와는 반대로 국가에게 모든 권력을 실어주고 국민들을 국가가 시키는 대로 총 단결하고 자신의 국가와 민족만 잘 살자는 극단적인 전체주의가 태동하기 시작했고, 전쟁에서 지면 모든 걸 잃지만 이기면 모든 걸 보상받을 수 있으니 군대가 국정을 좌우하는 군국주의가 패전국은 물론이고 일부 승전국에서도 보여졌다. 20세기 사상의 대립과 충돌의 시작이다. 일각에서는 이미 18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던 자유주의 무역에 기반한 100년의 세력균형 평화시대는 전쟁이 아니었어도 경제적인 이유로 종결될 기미를 보였으며, 1차 대전은 단지 그 부산물이었지 결코 원인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칼 폴라니]]가 대표적. 한편으로는 세계 평화에 기여한 면도 있는데, 히틀러를 비롯한 [[추축국]] 수뇌부들의 의도된 복수심과 침략적 동기로 시작된 2차 대전과 달리, 1차 대전의 개전 과정은 '''당시 기준으로''' 수뇌부들이 이성적인(...) 판단을 한 결과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 때문에 국제정치학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과제로 떠올랐다. 그 성과로 인류는 과거에 비해 대규모 총력전을 회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특히 바바라 터크먼이 제1차 세계 대전 발발과정을 연구한 저서인 <8월의 포성>은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핵전쟁을 막고 인류를 구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단, <8월의 포성>은 [[냉전#s-2|냉전 시대]]에 집필된 책의 특성상 미국인인 저자의 반소련 성향이 반영되어 러시아에 대해 지독하게 비하하고 있으니 [[교차검증|다른 책과 같이]] 읽어야 한다.][* 또한, 윈스턴 처칠에 대해 지나치게 찬양하는 어조로 쓰고있다.] 이때의 참전 용사들은 이전보다는 상황이 나았다. 이전 시대의 대다수 상이 군인들은 구걸 등을 하며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지만, 1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는 사회복지제도가 어느정도 자리잡혀 장애인 연금을 수령하고 병원에서 치료와 재활을 받을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